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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허구에 담겨진 진실

Written by
장윤규
Date
2012


1. 쓰나미 / 2. Yemen / 3. 수원영화동

무채색의 폐허.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가혹한 사건들에 대한 감정을 기억하는 색채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면 모든 오브제와 장소에는 화이트(white)만이 남는다. 이것은 곧 현대인의 냉소적인 태도인 동시에 본질적 의미로의 회귀다.

나의 작업은 사건 사고를 다룬 뉴스의 사진자료를 수집하는 데부터 시작한다. 이 이미지들은 대부분 분쟁 지역이나 재해를 다룬 사진들로 파괴된 건물과 잔해 등 폐허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 몇몇 사진을 골라 실제와 최대한 가깝게 모형으로 제작한 후 다시 평면의 사진으로 보여주게 된다. 모형으로 만들 때는 작은 사진의 이미지로 인해 묘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 외에도 사진에 나오는 인물을 삭제하면서 보이지 않게 되는 부분에 대한 표현의 문제와 축소된 형태로 제작하면서 생기는 표현의 한계 때문에 생략과 단순화된 묘사가 이뤄진다. 여기에 실제 당시 상황의 긴박함을 느낄 수 있던 화제의 흔적이나 혈흔은 색채와 함께 제거되고 무채색의 하얀 단색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형이 사진으로 확대되고 드러날 때, 전체적인 이미지는 실제 보도사진과 닮은 형태와
구도를 가지고 있으나 생략된 표현과 무채색의 이미지는 감정이 배재된 물성만이 남아있는 모호한 허구의 형태만 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 대한 고발이나 입장의 전달보다도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물음이다. 실제 사건 현장을 담은 사진은 비록 진실을 전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마치 허구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과 같지 않을까? 내 작업에서 표현의 부재와 단순화는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의 여과, 혹은 냉정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인위적으로 묘사된 무채색의 폐허의 모습을 대형사진으로 보여줌으로써 마치 하나의 조형물과 같은 이미지로 전달되고 거기서 일종의 미적인 아름다움을 느낀다면, 그것은 인간이 고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잠재적 욕구이지 않을까?

- 하태범의 글 중에서

현대의 사진은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통하여 장소와 시간을 초월해 일상화된 기록을 생성할 수 있게 되었다. 텔레비전과 신문 등 매스 미디어의 발달, 휴대전화와 인터넷의 보급을 통해서 세계인 누구나 지구촌 곳곳의 사건과 사고를 쉽게 접하게 되었고, 무한히 열려진 사회의 증거를 공유하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주변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건과 뉴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은 우리를 무감각한 방관자로 만들었다. 지진에 의해 건물들이 무너지고 수많은 인명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장면을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과 같이 무감각하고 무심하게 바라보는 시대가 된 것이다.
하태범의 사진을 통한 사건의 재현은 비참한 사건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무관심한 태도에 대한 경각심을 향해 질문을 던진다. 참혹한 사건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실마리들인 공포•참혹함•분노•절망 등을 기억하는 색채들을 하나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면 모든 오브제와 장소에는 화이트(white)만이 남는다. 하태범의 작업은 참사의 보도사진 자체를 왜곡하고 변형시키는 작업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다. 다만 사건의 흔적이 포함된 색을 제거하고 미니어처를 완성하여 사진으로 남긴다. 이 백색의 사진은 현대인의 냉소적인 태도이자 수많은 사건의 에피소드들이 사라진 순수한 제로지대를 통해서 사진의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던, 사건의 기록과 재생의 본질적 의미로 환원하고 있다. 바르트가 이야기하는 윤리•정치적 문화가 개입되어 있는 보통의 감정인 스투디움(studium)과 스투디움을 파괴하고 함께 나누는, 그리고 작가의 지고한 의식을 부여하는 것과 같은 푼크툼(punctum)의 이중성을 강렬하게 성취하고 있음이 흥미롭다.
스투디움과 푼트쿰적인 요소는 하태범의 작업을 통하여 사진의 진실성과 허구성에 대한 질문을 더욱더 증폭시킨다. 예술가는 사물의 많은 특성 중에 특정 부분들을 선택하고 모든 기법을 동원하여 ‘진실에 대한 해석’을 강조한다. 주관적인 의도가 난무할수록 진실은 사라지고 허구만이 남겨지게 된다. 사진은 기계적인 과정을 통하여당시 그곳에 있는 것 그대로의 포착을 통해서 진실성을 확보해내며 사물의 순수 객관적인 기록을 가능케 하는 우월성을 가지고 있다. 초기의 사진이 법원과 청문회의 증거로서 의학과 정책의 기록으로 쓰였던 것과 같이 객관화된 재현의 임무를 수행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객관화된 재현에 충실할수록 상호작용성과 개방성의 특성을 획득하는 반면, 원본적이고 유일한 저자성이라는 개념은 해체 당한다. 하태범의 작업은 대상적 진실의 표본이 다큐멘터리적인 사건의 극단적인 색채의 제거를 통하여 자신만의 저자성을 획득하였다. 미니어처를 통한 사건의 재구성을 만들어내고, 통상적인 사람들로 하여금 기억에 의존하거나 일상적인 현상에 의존하지 못하도록 백색으로 포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색으로 지워진 허구는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인 사건의 본질을 이야기한다.